열대 질병은 오랫동안 ‘적도 부근에서만 발생하는 감염병’으로 인식되어 왔다.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일본뇌염 등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만 퍼진다고 알려져 있었고,
한국과 같은 온대 기후 국가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이 상식을 뒤엎고 있다.
평균기온의 상승, 습도 증가, 생태계 변화는
열대 질병을 유발하는 병원체와 매개체가 온대 지역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여러 열대성 감염병의 국내 유입 또는 자생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이는 단지 외국의 문제가 아닌 국내 방역 전략과도 직결된 현실적인 보건 이슈로 다가오고 있다.
1. 기온 상승으로 모기 매개 감염병 활동 기간이 길어졌다
한국의 평균기온은 과거 대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980년대 대비 현재는 연평균 약 1.6도 이상 상승했으며,
이로 인해 여름철 고온 기간이 길어지고, 겨울철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 변화는 곧 모기 활동 가능 기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5월부터 10월까지 모기 개체 수가 활발히 유지되고 있으며,
말라리아 원충을 전파하는 모기(Anopheles spp.)와
일본뇌염 매개 모기(Culex tritaeniorhynchus)의 활동 범위도 북상하고 있다.
특히 북한 접경 지역과 인천·경기 북부 일부 지역에서는
말라리아 환자가 매년 수백 명 이상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해외 유입이 아닌 국내 감염으로 인한 발병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해외 유입형 질병이 국내 자생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입국자 수가 일시적으로 줄었던 시기를 제외하면,
한국은 매년 수많은 해외 방문자와 귀국자가 드나드는 국제화된 사회다.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열대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사람들 중 일부는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치쿤구니야열 등의 잠복기 감염 상태로 귀국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국내에 이미 매개 모기가 존재한다면
이 바이러스가 자생화되어 지역사회로 퍼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실제로 제주도, 부산, 전남 일부 지역에서는 뎅기 모기의 국내 생존 가능성이 보고되었고,
기온 상승과 겨울철 기온 유지로 인해 이들이 연중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같은 해외 유입 + 국내 자생 조건의 결합은 한국에서도 열대 감염병의 지역화 현상이 시작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3. 방역 전략과 질병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의 기존 방역 시스템은 국내 발생 감염병을 겨울~봄 중심으로 대비하고,
여름철은 식중독, 냉방병, 계절성 질환 중심의 대응 전략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국제화로 인한 질병 구조 변화는
기존 틀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감염 리스크를 만든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은 최근 몇 년 사이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열 등 열대 감염병에 대한 감시 강화와 정보 제공을 강화하고 있으며,
국내 모기 분포도 조사 및 유전자 감시 사업도 함께 진행 중이다.
이제는 방역 전략도
❶ 계절적,
❷ 지역적,
❸ 기후 기반의 예측 모델을 포함한
입체적 체계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또한 국민 인식 차원에서도 ‘열대병은 외국의 병’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국내 감염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과 생활 속 예방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론: 한국도 열대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후변화는 질병의 국경을 허물고 있다.
한국은 이제 지리적 안전지대가 아니다.
기온 상승, 모기 확산, 국제 이동이라는 3가지 요소가 결합되며
열대 감염병이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방역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계절 방역을 넘어서
기후 기반 보건 시스템의 재설계가 필요하며,
국민과 정부 모두가 이를 지속 가능하고 상시적인 보건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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