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는 감기, 독감, 수인성 질병처럼 계절마다 반복되는 질병에 익숙했다. 봄이면 알레르기, 여름이면 식중독, 가을엔 환절기 감기, 겨울엔 독감.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질병의 ‘계절성’이 흐려지고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 의료 현장에서 계속 보고되고 있다. 감염병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발생하거나, 기존보다 오래 지속되며, 새로운 지역과 시기로 번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분명히 기후 위기라는 구조적인 변화가 존재한다. 기온 상승, 이상 강수, 계절 경계의 붕괴 등은 감염병의 패턴을 바꾸고, 질병의 ‘시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후 위기가 어떻게 전염병의 계절성을 무너뜨리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계절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질병 발생 시기도 불안정해졌다
기후변화로 인해 봄·여름·가을·겨울의 전통적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예전에는 3월이면 완연한 봄, 7~8월은 더운 여름, 12월은 강추위가 일상이었지만,
최근에는 11월에도 반팔을 입을 정도로 덥거나,
3월에 폭설이 오는 등 비정상적인 계절 패턴이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바이러스나 세균, 곰팡이 같은 병원체들의 활동성에 영향을 준다.
특히 기온과 습도에 민감한 병원체는 특정 계절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던 특성을 잃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독감은 겨울철 대표 질병이었지만 최근에는 여름철 유행도 빈번하며,
수막구균 감염처럼 여름철에 주로 발생하던 질병이 겨울에 발생하기도 한다.
결국 계절성에 맞춰 설계된 백신 접종 시기나 방역 정책의 타이밍이 어긋나게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2. 감염병 활동 기간이 길어지며 ‘연중 질병화’가 진행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단지 시기를 흐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질병의 활동 기간을 늘리고 있다.
예전에는 특정 질병이 한 계절 안에서 발생하고 사라졌다면,
이제는 여러 계절에 걸쳐 지속적으로 환자가 발생하거나,
1년 내내 끊이지 않고 환자가 보고되는 감염병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모기 매개 감염병이다.
이전에는 6~9월 사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던 뎅기열, SFTS, 일본뇌염이
4월부터 10월까지 환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기온 상승으로 인해 모기나 진드기 같은 매개체가 더 오래 활동하게 되었기 때문이며,
그 결과 감염병도 함께 연중화되는 추세다.
이러한 현상은 백신 접종, 검사 시스템, 병원 대응 체계를
‘시즌별’이 아닌 ‘상시 운영’으로 재편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3. 예측 불가능한 유행이 보건 체계를 흔들고 있다
질병은 예측 가능해야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계절성이 무너지면서, 방역당국과 의료기관은 정확한 대응 시점을 잡기 어려워지고 있다.
기존에는 특정 시기에 검사 인력을 증원하고, 병상과 의약품을 확보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기후 위기로 인해 감염병이 비정상 시기에 터질 경우
병원 수용력 부족, 백신 수급 혼란, 검사 지연 등이 발생한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독감과 코로나19의 동시 유행이
2022~2024년 사이 빈번히 보고되면서 이러한 문제가 실질적 위기로 작용했다.
계절성을 바탕으로 한 질병 대응 모델은 기후 위기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지금은 질병을 ‘예측’이 아니라 ‘상시 대비’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결론
기후 위기는 인간의 삶의 방식뿐 아니라, 질병의 발생 패턴과 보건 전략 자체를 바꾸고 있다. 한때는 예측 가능했던 감염병의 계절성이 이제는 예외 없이 무너지고 있으며, 이는 감염병 대응 체계를 보다 유연하고 상시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여름엔 감기 안 걸린다", "독감은 겨울에나 맞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기후 변화에 맞춘 감염병 대응 교육과 인식 변화가 필요한 때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기후 + 질병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준비하는 전략이 가장 강력한 공중보건 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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