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항생제 내성 문제는 겉보기엔 전혀 관련 없어 보인다. 하나는 환경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 분야의 문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과학계에서는 기후 위기가 항생제 내성을 악화시키는 직접적 요인 중 하나라는 경고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항생제 내성을 ‘병원 안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로 볼 수 없다. 기후변화는 환경 속 세균의 특성과 분포를 바꾸고, 내성균이 더 빠르게 퍼지고 진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이 글에서는 기후변화와 항생제 내성 문제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존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1. 고온 환경이 박테리아의 내성 진화를 촉진한다
기온이 높아지면 세균의 대사 속도와 증식 속도도 빨라진다.
특히 일부 병원성 박테리아는 높은 온도에서 더 빠르게 분열하며,
그만큼 돌연변이 확률과 항생제 내성 발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2018년 미국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10도에서 20도로 상승할 경우,
항생제 내성률이 약 4~5% 증가하는 경향이 발견되었다.
이는 세균이 고온 환경에서 더 강인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다.
게다가 기온이 높아지면 감염병 발생 빈도 자체도 늘어나고
그에 따라 항생제 사용량도 증가하게 된다.
결국 더 많은 항생제가 환경에 노출되고
내성균의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2. 수질 오염과 항생제 잔류물이 결합하는 위험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폭우, 홍수, 가뭄은 하수처리시설과 수질 정화 시스템에 큰 부담을 준다.
그 결과, 처리되지 않은 항생제 성분이나 내성균이 포함된 폐수가
하천과 토양으로 유출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가축 사육에서 사용된 항생제는 비가 많이 오거나 가뭄 후 집중호우가 올 경우
토양과 하천으로 직접 유입되며, 이 과정에서 주변 환경의 세균들이
항생제에 노출되어 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환경 전체에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퍼지는 결과를 만들고,
이 유전자는 수질을 통해 사람에게 다시 전달될 수 있다.
즉, 항생제 내성은 더 이상 병원 안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환경 속 ‘순환하는 위험’이 되어가고 있다.
3. 기후 변화로 인한 항생제 남용 — 인간 행동의 변화
기후변화는 인간의 행동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며,
그로 인해 항생제 사용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고온다습한 환경은 감염병 유행을 자주 발생시키고,
의료 현장이나 가축 산업에서는 예방적 항생제 사용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감염 우려가 커지면 환자에게, 혹은 가축에게
‘혹시 모르니’라는 이유로 항생제를 먼저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후 환경의 불안정성은 항생제 남용과 과잉처방의 원인이 되며,
결과적으로 내성균 출현을 더욱 촉진시킨다.
실제로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 기후변화로 인한 감염병 리스크가 큰 지역에서
항생제 남용과 내성률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결론: 기후변화는 항생제 내성을 ‘가속’시킨다
기후변화는 항생제 내성을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성균이 나타나고, 퍼지고, 진화하는 모든 과정에 촉매처럼 작용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항생제 내성 문제는 단순한 의료계 이슈가 아니라, 기후 대응 전략의 일부로 포함되어야 할 보건 과제다.
수질 관리, 농업에서의 항생제 사용, 고온 환경에서의 감염병 대응까지 통합적인 접근 없이는 내성 문제를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연결 고리, 바로 기후변화다. 이제는 항생제 문제를 ‘기후’와 함께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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